다시 돌아가도 나는 너랑 만날래
예전에 내 신발을 사러 갔다가 조카의 운동화를 사 버린 적이 있었거든.
한 손바닥에 다 올려지는 정말 작은 운동화였는데
너무 신기하고 너무 귀엽고..
그 쪼그만게 뭐가 이렇게 비싸나 싶긴 했는데 도저히 안 살수가 없었어.
예상대로 온 식구들한테 잔소리를 들었지
걷지도 못하는 애한테 운동화가 왜 필요하냐고
금방 커 버릴텐데 이렇게 비싼 신발을 사오면 어떡하냐고
그런데 말로는 그러면서도 다들 얼굴이 해바라기처럼 환한거 있잖아
내가 엉금엉금 기어다니는 조카를 붙잡아서 그 신발을 신기는데 조카는 귀찮다고 얼굴을 찡그리고 어른들만 신이 났던 기억이 나.
모두의 예상대로 그 운동화는 거의 쓸모가 없었지.
조카는 그걸 겨우 두세번 신었을거야.그것도 집안에서만.
그러다 운동화를 신고 걸을수 있게 됐을땐 이미 그 신발은 작았고 조카는 자기가 그런 선물을 받았다는것도 당연히 기억 못할테고.
이다음에 내가 다 큰 조카에게
'삼촌이 너 요만할때,진짜 비싼 운동화 사 줬던거 기억나?'물어보면 조카는 아마..귀찮아 하겠지?
오늘,너도 알고 나도 아는 누굴 만났는데
그 사람이 그런 소리를 하더라.내 마음 다 안다는 얼굴을 하고는
그러게 왜 그렇게 잘해 줬냐고.
그 말에 잠깐 속상했다가 잠깐 그런 생각도 했어.
잘해줬던 거,좋아했던 거,사랑했던 거.
그런 말 앞에 '너무'라는 말을 쓸수 있을까.
쓸수 있다면
너무 잘해줬던 거,너무 열심히 좋아했던 거,너무 사랑했던 거,그런 걸 후회할 수도 있을까.
남은 건 기억밖에 없는데..
너한테 못했던 건 기억하고 싶지 않아.
너한테 잘해줬던 거,너한테 잘해주면서 내 마음이 기뻤던 거, 그런것들만 기억하고 싶어.
정확히 언제 우리가 헤어질 것을 아는 채로
처음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너랑 만날래.
사랑하고,질투하고,버거운 선물도 하고..
정확히 우리가 언제 헤어질 것을 알고 처음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나,너한테 더 잘해줄래.
이제는 그걸 아니까..
조카의 운동화처럼,밤새워 쓰고도 보내지 못했던 편지처럼.
나만 아는것들, 나만 기억하는 사랑
절대,아무것도 아닌것이 될수 없는 소중한 것들을.